식권 도장 찍다 말고 지원금 검색이나 하고 앉았다
어제는 퇴근하고 집에 오니 택배 박스 서너 개가 현관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름 아닌 결혼식 준비물들이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뜯어본 건 식권 도장이었다. 왠지 모르게 빨리 끝내야 할 것 같은 숙제 같은 기분이 들어서 저녁도 제대로 안 먹고 식탁에 앉았다. 식권 300장을 펼쳐놓고 빨간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는데, 문득 예전에 벡스코 웨딩홀 상담받으러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막상 내 손으로 식권을 하나하나 찍고 있으니 ‘내가 정말 시집을 가긴 가는구나’ 싶더라.
지원금 소식에 흔들리는 마음
도장을 찍다가 잠깐 휴대폰을 확인했는데 뉴스 피드에 지자체 지원금 이야기가 떴다. 누구는 20만 원을 받고, 누구는 통장을 만들어서 몇백만 원을 모은다더라 하는 소식들이다. 예비 신랑이랑 신혼여행 지원금이나 결혼 장려금 같은 걸 찾아보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사는 곳은 그런 혜택에서 묘하게 빗겨나 있었다. 화성처럼 ‘연지곤지 통장’ 같은 게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가 사는 곳은 그런 거랑은 영 거리가 멀다. 그냥 결혼 준비 리스트에 적힌 예산이나 잘 지키자는 마음뿐이다.
부산 박람회에서 느낀 기시감
사실 부산 박람회도 몇 번 다녀왔다. 거기 가면 다들 똑같은 표정으로 상담을 받는다. 팸플릿은 잔뜩 받아오는데 정작 집에 오면 뭐가 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어떤 곳은 너무 비싸서 쳐다도 안 봤고, 어떤 곳은 서비스가 좋다는데 신뢰가 안 갔다. 그때 벡스코에서 받은 견적서랑 지금 실제로 지출하는 비용을 비교해보면, 사실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 웨딩홀 대관료니 이바지 음식이니 하는 것들이 다 비슷비슷하게 돈이 샌다. 아, 부산 이바지 음식은 종류가 왜 그렇게 많은지, 엄마랑 통화하다가 괜히 예산 문제로 실랑이만 벌였다.
신랑 아버지 덕담과 식권의 무게
도장을 다 찍고 나니 손가락이 빨갛게 물들었다. 이걸 300번이나 반복하다 보니 나중에는 기계적으로 찍게 되었다. 옆에서 예비 신랑은 신랑 아버지 덕담 내용을 고민하느라 노트북을 켜놓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 문구 하나 바꾸는 데 30분 넘게 걸리는 걸 보니 웃음이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좀 짠하기도 했다. 광주 까사디루체 같은 곳에서 결혼한 친구는 덕담을 미리 녹음해서 틀었다고 하던데,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 싶다.
정해진 게 하나도 없는 느낌
결혼 준비라는 게 참 이상하다. 큰돈을 쓰면서도 정작 중요한 결정은 사소한 것들에서 갈리는 느낌이다. 식권 도장을 찍으면서도 ‘이거 도장 삐뚤어지면 다시 찍어야 하나’ 싶고, 식권에 일련번호 매기는 게 맞는지 아닌지도 가물가물하다. 인터넷에 물어봐도 다들 의견이 달라서 그냥 마음대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들은 식권 도장 똑바로 찍혔는지 자세히 보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끝나지 않는 리스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지만, 지우는 것보다 늘어나는 게 더 많은 기분이다. 신혼여행 지원금은커녕 항공권 가격만 매일매일 오르고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준비하자 싶다가도, 저녁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오늘 밤에도 자기 전에 결혼 관련 카페나 뒤적거리다가 잠들겠지. 식권 도장 찍는 일을 끝냈으니 이제는 청첩장 접는 일이 남았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한다.

식권 도장 찍는 게 생각보다 신경 쓰이네요. 저도 작은 일에 계속 집중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벡스코에서 웨딩홀 상담받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지원금 관련 정보는 계속 뜨네요.
식권 도장 찍는 게 마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의식처럼 느껴지네요. 예전에 상담받았던 분의 말씀처럼, 작은 과정에 집중하면서 순간을 느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