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나니 주변에서 쏟아지는 취집 의심들
퇴사를 결심한 건 그냥 좀 지쳐서였다
사실 회사를 그만둔 건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냥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알람 소리가 평소보다 유독 크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정말 딱 그 정도의 권태였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3년 좀 넘게 다니던 직장을 뒤로하고 퇴사서를 냈다. 주변에서는 다들 물었다. 다음 직장은 정해졌냐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쉬면서 좀 돌아볼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사람들은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특히 친한 동기 하나가 조용히 ‘너 설마 취집 하려는 거야?’라고 물었을 때, 진짜 당황스러워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요즘 세상에 취집이라니,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닌데.
소개팅 업체까지 고민하게 되는 분위기
쉬는 동안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결혼 얘기가 대화의 끝에 항상 걸렸다. 나이가 30대에 들어서니, 평소엔 연락도 없던 지인들이 뜬금없이 소개팅을 주선해주겠다고 나섰다. 한두 번은 고마운 마음에 나갔는데, 막상 앉아보면 상대방은 나보다 내 이력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어디 살고, 부모님은 뭐 하시고, 그래서 지금은 왜 쉬고 있는지. 대화가 아니라 면접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번은 강남역 근처에 있는 이름 좀 들어본 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으러 가봤다. 가입비가 수백만 원대라는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1년 기간 동안 몇 번의 만남을 보장해준다는 게 마치 뷔페 이용권 사는 기분이라 기분이 묘했다. 나는 그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건데, 이 시스템 안에서는 내가 하나의 상품처럼 평가받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혼 운세를 굳이 찾아보게 되는 마음
결국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생각이 많아졌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이 안 와서 사주 사이트에서 3만 원인가 내고 결혼운세를 봤다. 그냥 재미로 본 건데, ‘올해는 사람 조심하고 혼자 지내는 게 좋다’는 결과가 나왔다. 웃기게도 그게 위안이 됐다. 누군가를 꼭 만나야 한다는 압박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예전에는 33살까지는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막상 그 나이가 가까워지니 그냥 지금 당장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해졌다. 사람들은 흔히 20대엔 잘생긴 사람 만나고, 30대엔 안정적인 사람 만나서 결혼하는 게 정해진 코스인 것처럼 말한다. 나도 한때는 그런 루트를 타야 성공하는 줄 알았다. 근데 막상 그 길목에 서 보니, 그게 꼭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만 든다.
사랑과 물질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
최근에 인터넷에서 봤던 기사 내용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여자친구에게 비싼 차를 선물 받고 싶어 한다는 남자의 사연이었다. 사랑의 증표가 왜 꼭 고가의 물건이 되어야 하는지, 참 이해하기 어렵다. 나도 소개팅에서 그런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남자가 본인은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인데, 여자 쪽은 퇴사하고 쉬고 있으니 마치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로 취급하는 느낌. 내가 열심히 번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필요하면 그 사람 도움도 받으며 사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게 꼭 거래처럼 느껴진다. 내가 취집을 하려고 퇴사를 한 건 아닌데, 어느새 내가 뱉는 말들이 다 그쪽으로 해석되는 것 같아서 아예 입을 다물게 된다.
앞으로의 계획은 여전히 안갯속
이제 퇴사한 지 4개월이 넘었다. 다시 구직 활동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 건지 아직도 확실한 게 없다. 주변에서는 이제 슬슬 결정사 말고 지인 소개라도 더 받아보라며 등 떠밀지만, 나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덜 된 것 같다. 결혼이 인생의 완성인 것처럼 굴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가끔 밤에 혼자 있을 때면 ‘이렇게 계속 혼자 지내는 게 괜찮을까’ 하는 불안함이 훅 들어온다. 남들이 말하는 평균 결혼 나이니, 적정한 배우자 조건이니 하는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흐름을 완전히 벗어나는 게 두려운 건지 잘 모르겠다. 오늘도 그냥 핸드폰에 쌓인 메신저 알림을 끄고 누워 있다. 그냥 조금 더 쉬고 싶다.

소개팅에서 상대방이 이력서에 관심 있는 모습 보니까, 저도 좀 더 제 일을 발전시키려는 생각 많이 하게 되네요.
사주보는 게 처음엔 재미로 봤다가 오히려 마음이 한결 안정되는 걸 느꼈어요. 30대까지 결혼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는 저의 선택을 스스로 위로하는 과정 같기도 했네요.
결혼운세 보는 게 정말 웃기네요. 저도 비슷한 고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 부분에 공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