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회사 상담을 받고 강남역을 걸어 나오면서 기분이 묘했던 날
주변에서 하나둘 가기 시작하면서 괜히 조바심이 났던 시기
서른이 넘어가고 주변 친구들이 하나둘씩 청첩장을 돌리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괜히 조급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연애를 안 하고 싶었던 건 아닌데, 회사와 집만 반복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 자체가 아예 없었다. 주말에는 그냥 밀린 잠을 자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고, 가끔 들어오는 소개팅도 나이가 차다 보니 서로 주선자 눈치를 보게 되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결혼등급표라는 걸 보게 되었는데, 내 학벌이나 직업, 부모님 노후 준비 상태 같은 것들이 점수로 매겨져서 등급이 나뉘어 있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진짜 사람들이 이런 기준을 가지고 결혼정보회사에 가고, 또 등급이 나뉘어서 사람을 만나나 싶어서 호기심 반, 불안함 반으로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결심했다. 마침 친한 직장 동료 중 한 명도 가입을 고민하고 있다며 관련 정보를 찾아보고 있길래, 나도 더 늦기 전에 한번 겪어라도 보자는 생각으로 예약 전화를 걸었다.
강남역 테헤란로 큰 빌딩에 있는 상담실로 찾아갔을 때의 첫인상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업체들이 꽤 많았는데, 그중에서 규모가 커 보이는 가연 상담실로 예약을 잡았다. 위치는 강남역 테헤란로 근처에 있는 큰 빌딩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조금 걷다 보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빌딩 로비에 들어설 때부터 왠지 모르게 입사 면접을 보러 온 것 같은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안내데스크에서 이름을 말하고 조용한 복도를 지나 개별 방으로 안내받았는데, 다 칸막이와 문으로 나뉘어 있어서 다른 상담 받으러 온 사람들과 마주칠 일은 거의 없도록 배려한 구조였다. 방 안에는 푹신한 소파와 테이블이 있었고, 잠시 기다리니 단정한 정장 차림의 매니저가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냥 가벼운 연애 고민 상담 정도겠거니 생각했으나, 자리에 앉자마자 내밀어진 두꺼운 프로필 작성 용지를 보고 생각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현실적인 공간이라는 걸 실감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던 비용 이야기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대충 적고 나니 매니저가 본격적으로 가입 프로그램과 비용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가입비가 몇십만 원 선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가장 기본적인 일반 매칭 프로그램도 가입비가 최소 350만 원에서 시작했고, 만남 횟수를 늘리거나 전문직 등 특정 조건을 필터링하려면 500만 원을 훌쩍 넘어갔다. 연봉이나 부모님의 직업, 자산 규모에 따라 매칭할 수 있는 풀이 달라지는데, 그에 따라 가입비도 몇천만 원 단위까지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등골이 서늘했다. 매니저분은 내 나이와 직업을 고려하면 지금 가입하는 게 가장 가성비 좋고 유리한 시기라며 은근히 당일 결제를 권유했지만, 선뜻 신용카드를 꺼내기에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1년 계약 기간 동안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몇 번 만나지도 못하고 횟수만 차서 끝나면 이 돈은 그냥 날아가는 건가 하는 걱정이 앞섰다.
프로필을 적으면서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 내 객관적인 위치
상담을 진행하면서 내 학력, 직업, 연봉뿐만 아니라 키, 사는 지역, 심지어 부모님의 직업과 노후 준비 상태, 자가 소유 여부까지 아주 세세하게 적어 내려갔다. 평소에는 그냥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에 나름대로 만족하며 지냈는데, 그 종이 한 장에 내 모든 스펙을 수치화해서 적다 보니 내가 시장에서 참 평범한, 혹은 그 이하의 상품처럼 취급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니저분은 아주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말했지만, 중간중간 “이 정도 연봉이시면 상대방도 비슷한 수준을 원하십니다”라거나 “자가가 아니시면 매칭 범위가 조금 좁아질 수 있어요” 같은 현실적인 피드백을 줄 때마다 속으로 꽤 찔렸다. 결혼이라는 게 사랑만으로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자본주의적인 계산대 위에 나라는 사람을 올려놓고 보니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일반적인 소개팅 어플이나 지인 소개와 비교했을 때 느껴진 묘한 피로감
사실 예전에 너무 심심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소개팅 어플을 다운받아 써본 적이 있었다. 어플은 그냥 가벼운 마음에 프로필 사진 보고 대화 좀 나누다가 안 맞으면 그만이라 부담은 덜했지만, 신원 보증이 안 되어서 이상한 사람이 나올까 봐 불안한 마음이 컸다. 반면에 결정사는 공증 서류나 혼인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서 신원을 확실하게 보증해 준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자 신뢰가 가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인에게 받는 소개팅처럼 주선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건 편해 보여도, 매칭 하나하나가 다 돈이고 횟수 제한이 걸려 있다 보니 만남 자체에 들어가는 심리적 압박감이 엄청날 것 같았다. 어플처럼 너무 가볍지도 않고, 지인 소개처럼 껄끄럽지도 않은 중간 지점을 찾으려고 온 건데, 오히려 두 가지 방식의 단점을 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피로감이 먼저 밀려왔다.
가입을 미루고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복잡한 생각들
결국 그날 바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서 신중하게 생각해보겠다며 상담실을 나왔다. 강남역 거리를 걸어 내려오는데 머릿속이 참 복잡했다. 350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서 가입하면 정말 내가 원하는 인연을 만날 수 있을지, 아니면 돈만 날리고 자존감만 깎여서 끝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상담 매니저에게서 특별 할인을 적용해 주겠다거나 괜찮은 회원이 새로 등록했다는 문자와 전화가 계속 왔지만, 그냥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전화를 피했다. 아직도 가끔 인터넷으로 결혼정보회사 순위를 검색해보거나 가입 후기들을 찾아보며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용기는 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그냥 자연스러운 만남을 기대하기엔 나이가 너무 찼고, 그렇다고 내 조건을 점수 매겨 파는 시장에 나를 던지기엔 아직 내 마음속에 거부감이 남아 있는 게 지금 내 솔직한 상태인 것 같다.

프로필 작성하면서 묘하게 현실적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특히 신원 보증 부분에서 차이가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프로필 보고 순간, 제자리걸음만 하던 마음이 더 들더라고요.
프로필 작성 양식부터 비용까지, 생각보다 복잡하네요. 특히 등급표를 보고 기분이 묘했던 부분도 이해가 갑니다.
등급표를 보면서 사람들이 그런 기준으로 진짜 만나는지 궁금했어요. 제 학벌이나 직업 때문에 등급이 낮아질까 봐 걱정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