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만 받으러 갔다가 가입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입비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친한 친구가 하도 닦달을 하길래 반쯤 떠밀려 상담 예약을 잡았다. 강남 어디쯤이었던 것 같은데 건물 외관부터가 일단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연봉 1억을 받는 상위 5%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직장인인데 여기 가서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었다. 상담실은 조용했고, 차분한 목소리의 매니저님이 앉아 계셨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인 가입비 이야기를 듣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5000만 원이라는 숫자가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아니, 누군가는 그 돈을 내고서라도 매칭을 받는다는 건데, 이게 결혼이라는 게 이렇게까지 비즈니스 영역으로 들어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었다. 상담은 1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사실 그 시간 동안 내 스펙을 재단 당하는 느낌이 강해서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스펙을 줄 세우는 과정이 생각보다 더 건조했다

매니저님은 아주 능숙하게 서류를 넘기며 물어봤다. 나이, 연봉, 종교, 그리고 자가 아파트 유무. 요즘은 잠실 리센츠나 원베일리 같은 아파트 단지 단위로도 입주민 전용 소개팅 서비스가 나온다던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확실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그냥 어떻게든 마음 맞는 사람 만나면 그게 장땡인 줄 알았는데, 여기선 그게 아니었다. 내가 가진 조건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지, 지금 당장 가입하면 어떤 등급으로 분류될지 듣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30대 중반쯤 되니까 이런 정보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람이 참 숫자로만 치환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20대와 70대가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

상담실 복도를 지나가다 보니 꽤 연령대가 다양해 보였다. 누군가는 20대 초반부터 결혼 시장에 뛰어든다는데, 매니저님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오는 게 유리하다’고 했던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반대로 재혼을 고민하는 70대 어르신들도 상담을 받으러 온다고 했다. 결혼이라는 게 평생을 따라다니는 숙제 같은 거구나 싶어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반기에 커플매니저 채용이 많다는 공고를 본 적이 있는데, 그만큼 회원 수가 늘어서 인력이 부족하다는 뜻일까. 내가 지금 당장 가입비를 내고 들어간다고 해서 당장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딱히 들지 않았다.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그냥 나왔다

결국 상담만 받고 그냥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강남의 북적거리는 거리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5000만 원이라니. 그 돈을 쓰면 정말 내가 원하는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시스템에 내 시간과 돈을 던져놓고 운에 맡기는 걸까. 확실한 건, 여기를 다녀온 뒤로 이상하게 더 외로워졌다는 점이다. 친구한테는 그냥 ‘나랑은 좀 안 맞는 것 같아’라고 말하고 대충 둘러댔다. 사실 마음 한구석에는 내 조건이 좀 더 나았다면 매니저님 태도가 더 친절했을까 하는 찝찝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가라고 하면 글쎄, 잘 모르겠다. 당분간은 그냥 지인들 통해서 들어오는 소개팅이나 받으면서 지내야 할 것 같다. 그게 훨씬 마음 편하고 덜 계산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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