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 공원을 땀 흘리며 걷다가 문득 현타가 왔던 날

이혼하고 몇 년이 지나서야 남들 다 한다는 매칭을 시작했다

혼자가 된 지 올해로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처음 1~2년은 정신없이 지나갔고, 그 후에는 혼자 사는 삶에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말마다 텅 빈 거실에서 텔레비전 채널만 돌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문득 이대로 늙어가는 건가 싶은 쓸쓸함이 밀려왔다.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이제라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라고 성화였다. 요즘은 중년소개팅 어플도 잘 나와 있고, 돌싱연애를 전문으로 주선하는 곳도 많다면서 말이다. 처음에는 내가 무슨 이 나이에 그런 걸 하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밤늦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몇몇 서비스를 검색해 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부딪힌 건 비용과 신뢰도의 문제였다. 보통 대기업 계열의 결혼정보회사는 가입비만 해도 최소 300만 원에서 시작해 조건에 따라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갔다. 내 처지에 그런 큰돈을 덜컥 쓰는 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무료 채팅 앱을 쓰자니 이상한 광고나 목적이 불분명한 사람들만 가득할 것 같아 꺼려졌다. 결국 타협점을 찾은 것이 40대 이상이 주로 쓴다는 ‘은하수다방’이라는 모바일 매칭 서비스였다. 3개월 이용권이 약 15만 원 선이었는데, 이 정도면 한 번쯤 경험 삼아 시도해 볼 만한 금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필에 내 사진을 올리고 이혼남이라는 사실과 직장 정보를 적어 넣을 때의 묘한 기분은 참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청주에서 대구까지 오가며 느꼈던 거리와 나이의 현실적인 장벽

가입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몇 분과 연락이 닿았다. 내가 사는 곳은 청주인데, 매칭되는 상대방의 거주지는 참 다양했다. 한번은 청주소개팅으로 검색해서 알게 된 분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흐지부지되었고, 그 뒤에 연락이 길게 이어진 분은 대구에 살고 계셨다. 대구소개팅을 하러 주말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평일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쓰였다. 이십 대 시절의 연애처럼 밤새 전화기를 붙잡고 실없는 소리를 나누는 열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서로 주고받는 메시지 속에는 각자의 사정이 은근히 깔려 있었다. 상대방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었는데, 이혼후재혼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이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별하신 분들의 이야기도 간혹 듣게 되었는데, 사별이든 이혼이든 각자 마음에 깊은 흉터 하나씩은 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돌싱남으로서 상대방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고, 상대방 역시 조심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문자를 주고받은 지 한 달 정도 되었을 때, 마침 상대방이 주말에 서울에 올 일이 있다고 하여 중간 지점 혹은 서울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선유도공원에서 가졌던 숨막히는 여름날의 첫 만남

만나기로 한 날은 유난히 하늘이 뿌옇고 습도가 높은 7월의 주말이었다. 서울에서 조용하고 걷기 좋은 곳을 찾다가 선유도가볼만한곳으로 자주 언급되는 선유도공원을 약속 장소로 정했다. 복잡한 도심 카페보다는 탁 트인 야외를 걸으며 이야기하는 것이 덜 어색할 것 같다는 내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날의 가장 큰 실수였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멀리서 걸어오는 그분을 보았을 때, 긴장감과 함께 훅 끼치는 더운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온라인에서 사진으로 보던 모습보다 훨씬 차분하고 단정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공원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는데, 습한 날씨 탓에 5분도 지나지 않아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점잖게 차려입고 간 린넨 셔츠는 이미 등에 축축하게 달라붙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파는 매점을 찾으려 했으나 넓은 공원 안에서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뙤약볕 아래서 헤맸다. 여름데이트의 낭만은커녕, 서로 흐르는 땀을 닦아내느라 대화의 맥이 뚝뚝 끊겼다. 편의점 파라솔 아래 겨우 자리를 잡고 얼음 컵 음료를 마실 때쯤에는 이미 둘 다 체력이 방전되어 있었다.

대화가 겉돌기 시작할 때 몰려오는 미묘한 피로감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대화는 자꾸만 겉돌았다. 젊은 시절의 소개팅처럼 취미나 좋아하는 음악, 영화 같은 가벼운 주제로는 대화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화제는 현재 하고 있는 일, 노후 준비, 그리고 조심스럽게 꺼내는 과거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상대방은 재가에 대한 생각이 꽤 구체적이었다. 양가 부모님 문제나 혹시 모를 자녀들의 반응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반면 나는 아직 거기까지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터라 대답이 자꾸 늦어졌다.

“결국 나이 들어서 서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분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가 가슴에 쿵 하고 내려앉았다. 맞는 말인데, 왠지 모르게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 감정의 설렘보다는 생존과 안정을 위한 결합을 고민해야 하는 중년의 연애가 가진 씁쓸한 단면 같았다. 1시간 반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내내, 상대방의 눈치와 내 처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눈빛에서 언뜻언뜻 읽혔다.

결국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

약속했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에 걸어갈 때보다 훨씬 멀게 느껴졌다. 대충 저녁 식사를 같이 할까 물어보았지만, 상대방은 피곤하다며 차 시간에 맞춰 먼저 가봐야겠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나 역시 붙잡지 않았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가벼운 목례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차에 올라타 에어컨을 강하게 틀었다. 시원한 바람이 쏟아지는데도 마음 한구석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집으로 내려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내가 너무 서툴렀던 건지, 아니면 애초에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작정 사람을 만나보겠다고 나섰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중년이 되어 새로운 인연을 맺는다는 건 단순히 호감을 느끼는 것 이상의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꼈다. 15만 원의 앱 가입비와 왕복 주유비, 그리고 주말 하루를 꼬박 바쳐 얻은 것은 깊은 피로감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뿐이었다. 그래도 아예 시도조차 안 해본 것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당분간은 그 어떤 어플도 다시 열어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집 거실의 빈자리가 여전히 쓸쓸하게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혼자 있는 이 적막함이 차라리 편안하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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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대구에 사시는 분과 대화하면서 시간 차이 때문에 서로의 삶이 얼마나 다른지 느껴지더라고요. 특히, 젊었을 때의 활기 넘치는 모습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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