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받고 나서 기분이 묘했다

가입비부터 물어보는 분위기가 어색했다

주말에 시간을 내서 강남역 근처에 있는 결혼정보회사 사무실에 다녀왔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결혼 소식을 전해오고, 명절 때마다 친척들의 눈치를 보는 게 피곤해지기 시작하니 마음이 급해졌던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이상형 테스트’ 같은 간단한 정보만 입력하면 매칭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서 상담실 문을 여니까 분위기가 생각보다 훨씬 딱딱했다. 상담해주시는 분이 내 연봉이랑 부모님 직업 같은 걸 물어볼 때, 이게 무슨 면접인가 싶어서 속으로 조금 당황했다. 큐레이션이라는 그럴듯한 단어를 쓰시는데, 결국은 나라는 사람을 데이터로 잘게 쪼개서 점수를 매기는 기분이 들어서 묘하게 불쾌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200만 원에서 500만 원 사이라니

상담 도중에 가장 놀랐던 건 역시 금액이다. 대충 100만 원 정도면 되겠거니 했는데, 횟수 제한이 있는 상품은 200만 원대였고 좀 더 신경 써서 매칭해준다는 ‘노블’ 등급인가 뭔가는 5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물론 가입비만 내는 게 아니라 성혼 사례비도 따로 있다고 했다. 평범하게 연애해서 결혼하는 것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 거 아닌가 싶었다. 지금 내 통장 잔고를 생각하면 적은 돈도 아닌데, 과연 이 돈을 쓰고 사람을 만나는 게 맞을까 싶었다. 옆자리 상담실에서는 꽤 격앙된 목소리로 누군가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복도까지 새어 나와서 괜히 내 마음이 더 싱숭생숭해졌다.

스펙이 전부일까 하는 의구심

상담사님은 요즘은 조건과 가치관의 조화가 중요하다면서 뻔한 소리를 하셨다. 그래도 막상 서류를 작성할 때는 학력, 직업, 소득을 증명하는 서류가 꽤 많이 필요하다고 했다. 듀오나 제이노블 같은 곳들이 보통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검증한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서류 리스트를 받아보니 한숨이 나왔다. 졸업증명서에 재직증명서까지 떼야 한다니. 이렇게까지 해서 만나는 게 진짜 운명적인 만남일 수 있을까. 조건이 맞아서 만나는 건 좋지만, 막상 만나서 대화가 안 통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이렇게까지 체계적이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한 달 뒤에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상담을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오니 이미 해가 져 있었다. 강남역 10번 출구 쪽으로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참 많았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누군가와는 자연스럽게 만나서 결혼까지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왜 사무실에 앉아서 내 점수를 매기고 있었을까. 결국 그날 바로 계약은 안 하고 집에 돌아왔다. 상담사님이 명함을 건네주면서 3일 안에 결정하면 가입비를 조금 할인해준다고 했는데, 왠지 그 말에 혹해서 바로 결제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민해보겠다고 하고 나왔는데, 사실 지금도 마음이 반반이다. 돈을 쓰고라도 확실한 사람을 만나는 게 나은 건지, 아니면 그냥 내 속도대로 사는 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날 밤에 들었던 생각들

집에 와서 혼자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예전에 헤어졌던 사람 생각을 잠깐 했다. 그때는 참 조건도 안 보고 만났던 것 같은데, 지금은 왜 이렇게 재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까. 결혼정보회사에 가면 7개월 정도 교제 후에 성혼한다는 통계 자료도 보여주던데, 그 7개월이 인위적인 만남 끝에 맺어지는 기간이라면 그것도 왠지 무섭다. 억지로 서로의 조건을 맞추다가 지쳐버리는 건 아닐까. 어쨌든 상담은 받았고, 정보는 손에 쥐었지만 내일 당장 다시 연락할 것 같지는 않다. 당분간은 그냥 이 찝찝한 기분을 좀 더 안고 가봐야겠다.

Similar Posts

2 Comments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