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 매겨진다는 게 생각보다 기분 나쁜 일이었다

일단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갔던 날

지나가다 보면 커다란 광고판에 떡하니 붙어있는 그 결혼정보회사 있잖아요. 사실 거기 말고도 두어 군데 더 상담을 받아봤는데, 상담실 분위기는 어디나 비슷하더라고요. 아늑한 조명에 따뜻한 차 한 잔 내어주시고, 제 학벌이나 연봉, 부모님 재산 상황 같은 걸 적어 내라고 하셨죠. 사실 그 서류를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그래, 이게 현실이지’ 싶으면서도 묘하게 자존심이 상하는 기분은 어쩔 수 없더라고요. 마치 제가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증명하러 온 사람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특히나 매니저님이 제 정보를 훑어보면서 ‘아, 이 정도면 어느 라인업이 가능하겠네요’라고 툭 던지는 한마디가 그날 밤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등급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하더라고요

인터넷에서 흔히 말하는 그 ‘결정사 등급’ 이야기가 그냥 루머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게 아주 구체적인 숫자나 문자로 존재하더라고요. 어떤 곳은 A부터 D까지, 어떤 곳은 수치화된 점수로 저를 분류해 두었더군요. 제 직업이 나름대로 안정적인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누군가의 시선으로 평가받는 ‘6등급’이나 ‘B+’ 같은 딱지가 붙으니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예전에 TV에서 양상국 씨가 나와서 자기 등급 때문에 속상해하던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땐 그냥 방송용 에피소드겠거니 했거든요. 근데 막상 제가 그 자리에 앉아있으니 이게 사람을 정말 작아지게 만드는 뭔가가 있더라고요. ‘내가 이 정도인가?’ 싶다가도, ‘사람을 고작 이런 조건들로만 판단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반발심이 동시에 들었습니다.

사람보다 조건을 먼저 보는 시스템

매니저님은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어요. 요즘은 확실히 삼성이나 하이닉스 같은 곳 다니는 분들의 몸값이 하늘을 찌른다며, 전문직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받는다고 귀띔해주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궁금한 건 그런 거창한 조건이 아니라 ‘이 사람과 대화가 통할까’ 혹은 ‘내가 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같은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부분들이거든요. 하지만 결정사는 그런 걸 검증해주는 곳이라기보다는, 일단 조건이 맞는 사람들끼리 묶어주는 거름망 역할을 하는 곳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매달 가입비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 지불하는데, 막상 제공되는 정보지는 너무나 건조했어요. 종이 한 장에 적힌 학력과 직장, 키, 혈액형만 보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사실 좀 어색하기도 했고요.

만남을 이어가면서 느꼈던 묘한 피로감

결국 몇 번의 매칭을 진행해보긴 했습니다. 강남역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세 번 정도 만남을 가졌는데, 상대방도 저도 서로의 프로필을 이미 다 알고 나온 상태잖아요. 그러니 대화의 시작이 늘 ‘직장에서는 어떤 업무 하시나요?’ 아니면 ‘결혼하면 어디 쪽에 집을 생각하세요?’ 같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부터 나오게 되더라고요.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사업 파트너를 만나 계약 조건을 조율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조건을 깎아내리거나, 혹은 더 높은 등급의 상대를 원하고 있다는 게 눈빛에서 느껴질 때면 문득 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닫고 털썩 주저앉게 되더라고요. 이게 내가 원하던 만남이 맞나 싶어서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

결혼정보회사에서 매칭을 받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니겠죠. 성격 파탄자를 걸러주고, 최소한의 검증이 된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사람’을 만난다는 느낌보다는 ‘상품’을 고르고 고르는 느낌이 강해서 한편으론 씁쓸합니다. 아직도 매달 업데이트되는 리스트를 보면 눈이 가긴 하지만,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매니저님께 연락을 하거나 누군가를 소개해달라고 조르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건 그저 운명적인 타이밍이 있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계산적으로만 따지느라 더 좋은 인연을 놓치고 있는 건지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가끔은 결정사 밖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람과 아무런 조건 없이 커피 한 잔 마시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네요. 오늘도 저는 그냥 휴대폰에 쌓인 결정사 메시지를 확인만 하고 답장을 하지 않은 채로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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